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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리뷰] '미움받을 용기' 다섯 번째 밤 - '지금,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1.경제경영의 나비효과/② 독서&강연 2018. 1.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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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의 말


    * 결국 공동체 감각이 필요하지. 구체적으로는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관심(social interest)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감을 기르는 것. 이에 필요한 것이 '자기수용'과 '타자신뢰', '타자공헌'이라네.

    자기긍정이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걸세. 이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칫 우월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지. 

    * 한편 자기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걸세. 자신을 속이는 일은 없지. 더 쉽게 설명하자면, 60점짜리 자신에게 "이번에는 운이 나빴던 것뿐이야.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야"라는 말을 들려주는 것이 자기긍정이라네. 반면에 60점짜리 자신을 그대로 60점으로 받아들이고,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고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수용일세.


    *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교환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낸다. 그것이 자기수용이야.

    * 신용신뢰를 구별해서 생각해야 하네. 먼저 신용에는 조건이 따르지. 반면 신뢰는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조건을 일절 달지 않는 걸세.

    *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네.


    타자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인 셈이지.

    * 가장 알기 쉬운 타자공헌은 '일'이라네.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 또는 집안일을 하는 것. 노동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야. 우리는 노동을 통해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지. 나아가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받아들이게 되지.

    *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모은 부자들도 대부분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다네. 왜 일하는걸까? 한없이 탐욕스러워서? 아니야. 타자공헌을 위해, 나아가서는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확인받고 싶어서라네. 엄청난 부를 쌓고 자선활동에 매진하는 부자들조차도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고,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거지.


    *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해보라는걸세.

    * 편의상 지금까지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라는 순서로 설명을 했네. 그런데 이 세가지는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말하자면 순환구조로 연결되어 있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다, 즉 '자기수용'을 한다 → 그러면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자신뢰'를 할 수 있다 →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여기게 되면 '타자공헌'을 할 수 있다. → 타인에게 공헌함으로써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실감하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자기수용'을 할 수 있다.






    * 아들러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을 변화시키려면 '그때까지 살아온 횃수의 절반'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네. 즉 마흔 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면 20년을 더해서 예순 살이 되어야 하고, 스무 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면 10년을 더해서 서른 살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자네는 아직 젊어. 그만큼 인생의 빠른 시기에 배우고, 빨리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네. 빨리 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네는 세상의 어른들보다 앞서고 있네. 자신을 바꾸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나보다 앞서고 있어. 길을 잃어도 좋고 헤매어도 좋아. 수직관계에 종속되지 말고,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 말고, 자유롭게 앞으로 나가게. 만약 모든 어른이 '젊은 사람들이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세계는 크게 달라질 걸세.


    * '일'이란 회사에서 일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야. 집안일, 아이 양육,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취미 등 모든 것이 '일'이라네. 회사 업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회사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삶을 사는 거라네.

    * 나를 '행위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행복해질 용기'와 관련된 문제일세.


    *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네. 이런 현실에 대해 아들러는 간단하게 대답했지. '나는 공공체에 유익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통해서만 자신이 가치 있음을 실감한다고.

    * 모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렇다고 이 말이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라는 뜻은 아니라네. 그걸 알아야 하네. 행위의 차원에서든 존재의 차원에서든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것, 즉 공헌감이 필요하지.


    *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지.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네.

    * 원래 공부든 운동이든 어느 정도 결과를 내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네. 그런데 "특별히 못되게 굴어야지" 하고 결심한 아이, 즉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는 그러한 건전한 노력은 외면한 채 주목만 받으려고 하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를 일컬어 '안이한 우월성 추구'라고 하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지우개를 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서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아들이 있지. 그러면 분명 반 친구들이나 교사들이 주목할 거야. 그런 자리에서라면 잠시나마 특별한 조내가 되겠지. 하지만 그건 '안이한 우월성 추구'이자 불건전한 태도일세.

    * 왜 '특별'해지려고 하는 걸까? 그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특별히 잘하는'상태가 실패로 돌아가면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상태로 빠르게 넘어가는 걸세. 그런데 보통인 것, 평범한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걸까? 어딘가 열등하다는 뜻인가? 실은 누구나 평범하지 않나? 그 점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

    * 자기수용은 글 위한 중요한 첫걸음일세. 만약 자네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거야.

    *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자네가 '평범해지는 것'을 '무능해지는 것'과 같다고 착각해서겠지.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뿐이야.


    * 춤을 추고 있는 '지금,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 자네가 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kinesis)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네. 그에 반해 내가 말하는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키네시스 : 정해진 목적을 향해가는 운동

    --에네르게이아 : 과정의 상태에 있음을 뜻함. 실행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가진다.

    * 목표 같은 건 없어도 괜찮네. '지금,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춤일세. 심각해질 필요 없어. 진지하게 사는 것과 심각한 것을 착가갛지 말게.


    * 자네가 어떠한 찰나를 보내더라도, 설령 자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어.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자유롭게 살면 되네.

    * 그리고 찰나인 '지금,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걸세.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사는 거야.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테니까.

    *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수 있다는 뜻이지. 아들러 심리학을 배우고 나면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제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네.



    마지막 챕터에 해당되는 부분은

    반복해서 매일 읽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내게 깨달음을 주는 구절들의 향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결국 급하게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아졌다.

    몇 번이고 더 읽고 깊게 느끼고 싶어졌다.

    이것 또한 평범한 용기이리라.


    그래서

    고요한 밤 새하얗게 내린 눈 위를 걸어가는 

    그 청년의 모습을 생각하며

    리뷰를 조심스레 내려두고 감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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